나이가 들수록 상상력은 떨어지고 직관력은 높아진다. 아니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얼마동안 상상력만 풍부해지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퇴근을 기다리던 늦은 오후 걸려온 아내의 전화에서"2주전 받은 당신 신체검사 결과가 왔는데폐결절이있어서 흉부질환이 의심된다고 되어 있네" 라는 말을 들었던날이 지난 9일
아내에게서 대수럽지 않다는 투로 발음되었던 그 낯선 용어가오늘까지 약 2주간 나를 괴롭혀 왔던 것이다.
얕은 지식의 하천 인터넷에서는
"폐결절(SPN)이란 3cm이하의 작은 구상 병변을 일컫는 것으로, 폐쪽흉막의 아래쪽에 위치하더라도 공기를 포함하는 폐로 둘러쌓여 있다. 폐결절 환자는 진단하기에 어려움이 있어, 흉부종양학에서는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폐결절은 또 다른 진단을 통해, 전이암, 육아종, 양성 기관지암 등으로 판단되기 전까지는 모두 초기암으로 진단된다." 라는 문장을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15년의 긴 흡연력을 가진 나로서는 그 정의 하나가 바로 전문의의 소견과도 같이 받아들여졌고불안하고 언짢은 그날밤을 그와 똑같은 정의를 내리고 있는 수많은 사이트들을 확인사살하는데 소비할 수 밖에 없었다.
왠지 가슴이 답답하다는 느낌이 나를 짓누르던 그 다음날을 내내 어떤 인내심으로 참아냈는지 모른다. 평상시 성격대로라면 빠른 시간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정확하게 확인하려 했을 터인데 그날 그렇게 툭 던지듯 전화로 "폐결절"이라고 정확히 발음했던 아내가 내맘과는 달리 나의 증상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여느날보다 편안해 보이기 까지 했다. 그래서 오히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러다가 암 진단이라도 받으면 감당할 수 없을 큰 충격을 받을 텐데 이제 아내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하는 웬갖 시시한 생각이며, 얼마전 들어놓은 보험까지 합하여 최초의 암진단시 지급받는 금액이 얼마며 입원시는 얼마 사망시는 얼마며 하는 것들을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버리고는 결국더욱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내의 운전이 마음에 들지 않던 그 다음날(11일) 속으로 짜증이 난 듯 보이는 아내에게 별다른 멘트도 없이 차에서 내리곤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부설의원을 찾았다. 내과 전문의 함선생님은 별 것 아닐거라며 내 맘을 진정시키줄려고 애를 쓰셨지만 오히려 그럴 수록 내 맘은 편하지 않았다.더 견디기 어려웠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위안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함선생님은 폐결절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도 "폐암"이라는 용어를 아예 입에 담으려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결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 선생님을 소개시켜주곤 찾아가 보라고 할 때까지 그점이 오히려 날 불편하게 했었던 것 같았다.
곧바로 진단방서선과로 발길을 옮기며 확률상 낮은 것이라는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1백만분의 1이라면 2매를 사면 5십만분의 1의 확률이 되는 것 아닌가?
아니 1억 1조분의 1이라도 그 존재가 확인 될 수 있다는 것이 확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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