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과 우영의 만남의 기간은 우영의 삶의 길이와 거의 동일하다.
주변의 오만 만류와 권유 다소 위기감을 줄 수 있는 갖은 설들을 이겨내고 용케도 이 둘의 동거를 끝까지 강행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우영엄마의 강한 의지와 변치않는 생중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선 유별나게 식탐이 많은 생중이 더러 아니 자주 우영의 군것질을 탐내어 가로채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 둘의 동거를 반대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우영이 동물을 보는 시각이 자연스럽고 또 친해지는 여러 모습들을 보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가족들에게도 이것을 감추고 있다고 우영엄마는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저 인정할 뿐이다.
그런데 지난 주 둘에게도 어떤 형태이든 동시에 엄마인 아내를 기다리는 두 녀석들의 모습이 거의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장인어른의 문병을 마치고 나오는 아내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고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들에 왠지 가족적인 동질감이 느껴졌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날 이후 난 다시 생중에 대한 연민이 되살아 난 것 같다.